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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통해 세상을 보다/무기 방어구 역사85

보디아머, 방탄복에 신소재활용하기 보디 아머는 현대의 전사 갑옷? 과학기술의 쇄신으로 나타난 신소재를 활용함으로써 보다 고성능 방어구가 탄생하였다. 인류가 싸움을 계속하는 한 방어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부활을 이룬 동체 갑옷과 대형 방패 요즘 방탄복에는 합성수지인 케블라가 사용되는데, 이것은 빛에 의해 변질 열화되고 만다. 5년 정도면 방탄 효과를 잃기 때문에 경찰 등에서는 3년마다 신품으로 교환하고 있다. 또한 물에 젖어도 열화된다. 방수 처리도 가능하지만 그러면 이번에는 통기성을 잃는다. 그리고 피탄당한 경우에도 방탄 효과가 저하한다. 구체적으로는 가로세로 5cm 크기의 면을 못쓰게 된다. 군대에서 보디 아머는 우선 돌격병과 전차병에게 지급되고, 다음으로 엘리트 부대인 공 수부대원과 해병대원에게 배포되었다. 구체적 예시를 들자면.. 2022. 2. 8.
방탄조끼의 원리와 신뢰도(영국 전차병의 마스크, 방탄복의 구조, 특수 부대의 보디 아머) 방탄조끼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소총탄을 사용하는 기관총과 돌격소총은 최강 수준의 개인화기지만, 현대의 보디 아머는 그 것조차 막아낼 수 있다. 폭발과 파편, 총탄을 막으려면 방탄이라기보다 폭발과 포탄 파편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구는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각국 군대의 일부에서 채용되었다. 현대의 군대나 경찰의 폭발물 처리 반이 장비하는 전신 방어구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제1차 세계대전 때 사상 최초로 전차를 투입한 영국에서는 전차병을 보호하는 장비가 고안되었다. 공격을 받은 전차 내부에서는 충격으로 떨어져 나온 쇳조각이 이리저 리 튀면서 전차병이 부상당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대책으로서 당시 채용되고 있던 MK1 헬멧과 사슬 갑옷 달린 강철 마스크를 장비한 것이다... 2022. 2. 8.
중국 종이갑옷(지갑)과 덩굴갑옷(등갑) 종이나 덩굴로 만들어진 갑옷 중국의 방어구 가운데 다른 지역에는 유례가 없는 희귀한 것이라면 종이 갑옷이 있다. 또한 나무를 엮어 만든 방어구도 아시아 특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용성 높은 지갑과 등갑 세계적으로 드문 종이제 갑옷인 지갑은 7세기부터 보급되어 10-17세기까지 사용되었다. 7세기경의 의복은 종이로 만들기도 하였는데, 정확하게는 종이에 무명 이나 비단 등을 포갠 구조이다. 따라서 지갑은 천 갑옷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께는 3cm로서 화살이나 탄환을 막아내는 효과가 있으며, 젖으면 그 능력이 향상된다. 의외로 유용하기는 하지만 접근전에서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지갑은 보병용 또는 궁병용 갑옷으로서 채용되었고, 가벼운 점을 높이 평가받아 수군에서도 쓰였다. 희귀한 갑옷이라.. 2022. 2. 7.
중국 쇄자갑(체인메일)의 진화 과정 쇄자갑은 어떻게 진화했나? 체인 메일은 세계 각지에 보급되어 있던 방어구로 중국의 사슬 갑옷은 금속 고리를 서로 연결한 것이었으며 그 후 진화 발전하였다. 쇄자갑에서 면갑으로의 발전과 갑옷 시대의 종언 서양에서 말하는 체인 메일은 7세기에 서방으로부터 전해져 '쇄자갑이라 불렀다. 17-19세기에도 널리 쓰였는데, 17세기 명대의 쇄자갑은 강자연환갑 또는 '연쇄갑'이라고 하며 소재는 강철이었다. 이어진 청대의 것은 '철갑'이라 불린다. 이것은 가슴에 호심경이 달려 급소를 보호하였다. 한편 7세기 이전에도 '한쇄개'라는 사슬 갑옷의 일종이 존재하였으나, 그다지 세상에 보급되지 않은 귀중품이었다. 또한 13세기에 중국을 침략한 몽골군은 저마다 다른 역할을 담당하는 몇 가지 기병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일부가.. 2022. 2. 7.
중국 기병과 말이 착용하는 방어구와 마갑 중국의 기병과 말의 방어구 중국에서는 기병의 갑옷보다 먼저 말의 갑옷이 등장하였다. 마구 발명되어 기병이 기동 전력으로 인정받기 이전부터 전차가 전장을 누비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차에서 기병으로 기원전 8세기의 유적에서 말의 갑옷 '마감'이 출토되었다. 옛날에는 말과 마부로 구성된 전차가 주력이어서 말을 방호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안장과 동자의 발명을 거쳐 승마 기술이 확립한 후에 겨우 기병이 전력화되면서 3세기 경양당갑이라고도 등장한다. 이것은 5~6세기에 보급되어 수와 당대를 거쳐 13세기까지 사용된 왜 대표적인 갑옷이다. 동체 앞면과 뒷면의 두 부품으로 구성된 라멜라 판을 머리부터 뒤집어쓰듯 착용하고 허리 근처를 벨트로 묶는다. 이러면 옆구리가 텅 비게 되지만, 경장이 요구되는 기병의 숙명이었다. .. 2022. 2. 7.
통수개와 명광개 중국읠 대표하는 갑옷 중국을 대표하는 갑옷 명광개는 눈부시게 빛나는 호심이 달린 독특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통수개와 함께 무용을 자랑하는 장수가 입기에 걸맞은 영웅적인 갑옷이다. 통수개와 명광개 중국의 갑옷이라고 하면 역시 군웅이 활약하던 삼국지(國) 시대의 것을 떠올리지 않을까. 그 무렵의 대표적인 방어구가 '통수개'와 그에 이어 등장한 '명광개'이다. 통수는 3~5세기에 주류가 된 갑옷이다. 물고기 비늘 모양 감염을 잇댄스케 일 아머로서 가장 큰 특징은 반소매가 달려 있는 점이다. 겨드랑이는 갑옷의 약점 중 하나 인데, 이 갑옷은 반소매가 달려 있어 확실히 보호된다. 제갈량이 발명했다고 전해지 지만, 사실 소매 달린 갑옷은 한나라 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아마도 공명이 소매 달린 갑옷의 성능을 향상시켰던 것으로 보인.. 2022. 2. 7.
진나라 전차 마부의 가장 좋은 갑옷 진나라에서는 전차의 마부가 가장 좋은 갑옷을 입었는가 청동과철기가 일반화될 무렵의 중국에서 어떤 형태의 방어구가 사용되었는지 아는데 진나라의 병마용은 최적의 사료이다. 진나라의 당시 모습을 전해주는 도자기 인형 주 시대가 절정기였다. 당시의 유적에서는 가죽 안감에 청동 갑편을 꿰맨 앞치마형 흉 청동 방어구가 활발히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 11-기원전 8세기 전국시경으로서 감, 난각형 청동 주가 출토되고 있다. 그리고 철제 방어구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5~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이다. 전국 시대의 군단은 전차를 모는 지휘관이 통솔하며, 지휘관은 부대의 선두에 서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최강의 장비가 주어졌다. 하반신은 전차에 가려지지만, 상반신과 머리는 노출되므로 견고한 방어구로 방호했던 것이다. .. 2022. 2. 7.
중국 갑옷 혁갑이란 무엇일까? 혁갑이란? 갑옷뿐만 아니라 투구나 손 보호구 등 부위 방어구의 재료로 가죽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럭저럭 방호력이 있고 보다 가공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무인의 계급을 불문하고 사랑받은 혁갑 전 시대를 통틀어 중국에서는 소가죽 가죽 방어구의 주된 재료였다. 서방에서는 낙타, 남방에서는 코끼리, 동쪽 연안부에서는 상어 가죽도 쓰였다. 일찍이 코뿔소 가죽이 애용되 었으나, 7세기 이후 입수가 곤란해졌다고 한다. 중국 지역의 독자적인 고안점으로는 옷을 들 수 있다. 일본의 갑옷도 그렇지만, 옷으로 가죽과 나무, 금속 등의 소재를 코팅함으로써 방어구의 강도를 높여 오래 쓸 수 있게 하였다. 가죽 갑옷의 총칭을 '갑'이라고 한다. 금속 갑옷도 예로부터 존재하였으나, 갑은 가볍고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어 17세기.. 2022. 2. 7.
중국의 방어구 발전 과정 (원시적인 적층 갑옷에서 라멜라로) 중국의 방어구는 어떻게 발전하였는가 대략적으로 중국에서는 갑옷을 개갑, 갑, 투구를 주라고 부른다. 개갑과 주는 같은 재질로 제작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순조롭게 진화를 이룬 중국의 방어구 중국의 고대 인류가 가죽으로 의복을 제작한 것이 약 1만 8000년 전으로 여겨지며, 그 후에 방어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사기 등 고문서의 기록에 따르면 세계의 선사 문명 지역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 전 부터 가죽과 청동 방어구는 존재하고 있었다. 전설 속의 왕과 마신이 방어구를 발명했다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신석기 시대 이후 곧바로 금속 가공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 하여 서양보다 우수한 소재의 방어구가 제작되어왔다. 고고학적 증거로서 기원전 17세기 후기의 유적에서 '갑'의 잔해와 청동 주가.. 2022. 2. 7.
일본 여성 무사의 갑주(다테가, 이이가, 사나다가, 곤이토스소스가케오도시도마루) 여성 무사의 갑주는 실재하였는가 평화로운 시대에는 자녀나 여자용 주도 만들어졌다. 서양에도 같은 의도로 제작된 유아용 플레이트 아머가 존재한다. 현실 세계의 무용담 먼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다이묘의 딸을 위하여 주문 제작된 갑주는 현존한다.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서나 혼수품으로 마련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테면 다테가에서는 아내를 맞아들이는 기념으로서 다테모노 없는 검은 갑주를 사나다에서는 여성 전 일륜투구와 어린감을 이이가에서는 야치요히메를 위해 귀여운 댄쓰키마 에다테가 달린 붉은 갑옷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장식 갑주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로 무기를 싸운 여성 무사의 갑옷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에히메현 오야마쓰미 신사에는 이요 현재의 예비역 수군 일족의 쓰루히메 가 오미시마.. 2022. 2. 7.
일본의 아시가루가 쓰던 무장(칼, 갑옷) 아시가루는 어떤 장비를 하고 있었는가 헤이언 시대 이후의 병률은 스스로 마련한 장비나 무장(武將)이 준비한 간이 갑옷 등을 착용 하고 천장에 나갔다. 엉성한 장비이기는 해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던 듯하다. 산야에서의 게릴라전기마대를 습격하는 노부시 무로마치 시대(14세기 중반 무렵 한 부대는 기마무사 60기+도보 무사 50명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이 시대에는 도보전 - 백병전으로 이행되었으나, 그래도 사상자의 2/3-3/4 은 화살에 의해 발생하였다. 경장 보병 · 명이 부시 본래 산야에 숨어 패잔병을 약탈하던 무장 농민단하였으나, 다이묘가 이들을 조직하며 추격 등에 이용하게 된다. 구릉이나 민가의 지붕에 숨어 기마대를 기습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15세기 들어 창 부대가 편제되어 기마대와 충돌하게 된다. .. 2022. 2. 7.
멘구와 소멘, 하이다테, 한쓰부리, 와키아테 멘구나 그 밖의 고구소쿠 습도가 높은 탓인지 일본에서는 풀 페이스 투구가 유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굴을 보호할 필요는 있었으므로 우선 무로마치 시대에 멘구가 보급되었다. 투구의 보조품이나 대용품이 되는 멘구 대부분의 연구는 철이나 가족, 또는 층층이 쌓은 소가죽을 아교로 굳힌 네리카와는 재질로 만들어졌다. 거기에 추가로 옻칠하여 보호 강화한다. 종류는 몇 가지가 있는 데, '한쓰부리는 뺨과 이마를 보호하는 고구소쿠이다. 병사용이지만, 무장이 투구 속에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히타이아테'는 이마만을 보호하는 장갑머리띠이다. 얼굴 전체를 덮고 목 언저리까지 보호하는 것이 또는 '으로, 철면에 옷을 칠해 마감한 뒤, 금속으로 된 이 등 위압적인 장식을 달기도 하였다 얼굴 하반부에서 목까지 보호하는 것은 .. 2022. 2. 7.
일본 부위방어구 고구소쿠(고테와 스네아테) 부위 방어구 고구소쿠란 갑주를 제외한 방어구의 총칭이다. 구소쿠라고 하면 도서이구소쿠의 약칭이지만, 고구소쿠의 구소쿠는 전혀 의미가 다른 단어이다. 팔과 다리 방어구 -고테와 스네아테 고구소(小)라는 표현은 상당히 옛날부터 사용되어왔지만, 헤이안에서 가마쿠라 시대의 부위 방어구다. 이 시대에 일본 갑옷은 완성의 영역에 이르렀는데, 고 구소쿠도 마찬가지였다. 고테에는 '손을 넣고 싼다'는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는 양손에 끼우나, 가마쿠라 중기-후기까지의 키마 무사는 고테를 왼손에만 장비하였다. 이것을 '가타고테'라고 한다. 활을 쏠 때는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오른손으로 시위를 당긴다. 좌반신이 앞에 오는 자세가 되기 때문에 오른손에 고테를 착용하면 불편했던 것이 다. 이런 습관은 물론 도보전의 시대가 .. 2022. 2. 7.
일본의 다양한 투구 장식들 투구 장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다테모노린 투구 장식의 총칭이다. 전국 시대 전후부터 장착 위치에 따라 마에다테 이와키다테 우시로다테 등 종류가 늘었다. 마에다테와 와키다테, 그리고 쓰키모노 투구 장식은 가마쿠라 시대에 보급된 호시카부토에서부터 활발해졌는데, 처음에는 단순 한 V자형 금속판 '구와가타였다. 나중에는 중앙에 김 모양을 덧붙인 미쓰쿠와가타가 유행한다. 집단 백병전으로 이행하기 이전 시대에는 일반 무사가 투구를 화려하게 꾸밀 필요가 없었고, 본래는 무사단의 리더만이 다는 표지였다. 그 후 집단전으로 이행되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하극상이 당연해지자 누구나가 투구에 구와가타를 달게 되었다. 그리고 전국 시대에는 가와리카부토가 증가한 만큼 취향을 살린 마에다테도 나타나게 된다. 구와가타는 고정된.. 2022. 2. 7.
무사들의 투구, 투구교환 무사들은 왜 투구에 집착하였는가 서양 투구에도 드물게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것이 있다. 하지만 일본만큼 투구에 고집을 보이며 다종다양한 투구를 남긴 나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다. 현실적인 이유와 죽음에 대한 로망 전국 시대의 무사는 특히 투구에 집착하였다. 투구는 애초에 무사라는 신분을 증명하는 전장의 필수품이다. 시계에서 투구는 예외로 치고 일정 이상의 신분을 가진 사람만 쓰는 것이 허용되었다. 당시에는 가와리카부토라는 기발한 디자인과 화려한 마에다테가 유행하였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눈에 띄기 위해서였다. 집단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전장에서의 공적에 상 용하는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동료와 상사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해야 했다. 등에 깃발을 꽂는 등의 방법도 있지만, 전장에서는 투구로 개인을 판별하는 .. 2022.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