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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카부토란 어떤 투구였는가
- 제조 기술이 미숙한 탓에 두툼하고 묵직한 투구가 되었지만, 견고함으로는 정평이 나있어 후세의 세련된 투구보다 신뢰성이 높다.
- 남자다운 투구이다.
접합 징을 별에 빗댄 명칭
- 고대부터 사용되던 쇼카쿠쓰키카부토는 12세기 후반에 '호시카부토로로 진화한다.
- 호시벌을 뜻하는 일본어 역주란 투구에 박힌 짐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장식도 된다.
- 처음 에는 '이카보시카부토(IE)'라고 하여 스파이크 모양을 한 커다란 짐이 달려 있었으나, 점 차 작아진다.
- 호시카부토의 하치는 10장 이상의 철판을 징호)으로 접합한 것으로서, 사용 된 철판의 장수가 명칭에 붙는 경우가 많다.
'십간(+)'이라면 10장 사용되었다는 의미이 며, 수십 장 사용할 때는 가늘고 긴 판이나 위아래로 나누어진 판을 사용한다. 호시카부토 의 꼭대기에는 지름 5cm가량의 둥근 구멍이 있어, 그곳에 '하치만자'라는 고리를 끼운다 정수리에는 신이 깃든다는 전통에 따른 구조이다. 이 하치에 시코로가 부속하여 투구는 완성된다. 처음에는 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지만, 나중에는 안쪽에 가죽이나 천을 붙이게 되었다. 또한 징 둘레에 시노다레라는 장식 겸 보강용 판을 대기도 한다. 턱끈 은 시노비노오라고 부른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철판의 장수가 늘어나는데, 그것을 고정하는 정도 증가하면서 소 화되어간다. 판끼리 이중삼중으로 겹쳐 방호력을 향상시키고, 관 사이에 틈을 마련하여 공 간장갑 장갑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공격의 위력을 저하시키는 것의 원리로 강도를 높이는 고안도 이루어졌다.
신뢰성 높은 투구가 된 반면 무게도 상당해져서, 전투 직전까지는 쓰지 않았 다고 한다. 호시카부토의 시코로는 고대 투구의 그것과 상당히 디자인이 다르다.
오요로이 에 맞춰 4~5단짜리 소찰제가 되고, 시코로 정면에 뒤로 젖혀진 부분이 생겼다. 이것을 `후키카에시`라고 한다. 헤이안-가마쿠라 전기까지의 시코로는 아래로 갈수록 자락이 넓어지며 후두부와 어깨를 덮을 만큼 커다랗다. 스기나리시코로라고 하여, 더부룩한 세미롱 헤어 같은 모양이다. 기마 무사에게 애용되던 호시카부토의 전성기는 도보전투가 주체가 되어가면서 끝을 고한다. 다만 양질의 투구임에는 틀림없었으므로, 그 후에는 고보 시카부토로서 존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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