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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대의 투구에는 어떤 것이 있었는가
- 스지카부토 이후에 등장한 나리카부토는 양산이 용이한 염가품이면서 성능은 좋았다.
- 가리카부토의 베이스도 된 전국 시대를 대표하는 투구이다.
제철 기술과 대장 기술의 발달이 낳은 판금 투구
- 도세이구소쿠의 시대에는 종래의 호시카부토와 스지카부토, 거기에 남북조 시대때 등장한 나리카부토가 흔히 채용되었다.
- 나리카부토란 무언가를 본뜬 투구를 의미한다.
-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나리카부토의 일종은 대개 3~5장의 철판으로 하치가 구성된다.
- 이전까지의 투구보다 구조가 간단하여 양산이 가능했기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 그리고 나리카부토를 토대로 다양한 가와리카부토 만들어졌다.
나리카부토 계통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즈나리카부토'일 것이다. 머리형에 맞춘 투구라는 뜻으로 하치 둘레 전체에 마비시가 달리기도 한다. '돗파이나리 카부토'는 사다리꼴 철판을 짜 맞추고 마비사시를 단다. 간사이지방에서 유 행한 모델이다. '모모나리카부토(桃)'는 2~4장의 철판을 짜 맞추고 꼭대기를 집게로 집 어 복숭아 모양으로 만든다. 이것도 간사이에서 유행하였는데, 난반카부토(兜, 벗이 있는 투 귀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설도 있다. 이들은 모두 하치에 시코로를 달아 완성한다.
지역성 있는 "향토 투구의 예로 '사이가카부토바치(t)'를 들 수 있다. 그 이름대로 사이가 와카야마현의 갑주 장인이 선호하였다.
고훈 시대 후기의 투구를 모방한 것으로 서, 7~8장으로 이루어진 스지카부토이다. 사이가와는 별개로 에도 시대 후기에는 복고조가 유행하면서, 옛 디자인의 투구가 새로 만들어져 가마쿠라 시대와 같은 커다란 시코로가 달렸다.
그 속칭을 '만주지코로(만두 시코로'라고 한다. 또한 새로 만들지 않고 만듦새가 좋은 옛날 투구를 재활용하기도 하였다.
남북조 시대부터 대부분의 투구에는 안감을 대게 되었다. 그저 가죽을 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천을 채운 뒤 가죽을 씌우거나, 투구 내부에 공간을 마련하여 하치와 안감이 뜨는 구조로 만들었다. 가장 고도의 것은 십자 모양 소가죽을 안쪽에 걸치는 기법으로, 현대의 헬멧과 같은 구조이다. 이로써 받는 충격이 상당히 감소하여 보다 쾌적하게 쓸 수 있게 되 었다. 전국 시대부터는 투구 안쪽의 공간에 작은 불상이나 부적을 넣는 사람도 나온다.
나리카부토 (形兜) | 즈나리카부토 | 돗파이나리카부토 | 모모나리카부토 |
무언가를 본뜬 투구라는 의미 즈나리카부토(頭形鬼)와 모모나리카부토(兜)도 같은 나리카부토의 일종 | 판금 몇 장으로 구성 마비사시가 달렸다. 시코로도 구부린 판금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
18장의 사다리꼴 판금으 로 구성 꼭대기가 약간 뾰족하다. |
4장의 철판을 짜 맞춘다. 꼭대기를 집어 접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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