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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구소쿠
- 복고구소쿠는 지고의 예술품을 낳는 동시에 예로부터 계승되어온 일본 갑옷의 훌륭한 기능을 빼앗았다.
- 그 공죄는 크다.
기능을 죽이고 전통의 미와 화려한 장식을 추구
- 복고구소쿠는 에도 시대의 평화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는 유행이다.
- 제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제창에 의한 것으로, 그는 옛날 갑옷을 연구하여 '이토오도시오요로이'를 만들게 하였다.
- 마에다테는 용모양이며, 보주를 새기고, 갑옷 여러 군데에 접시꽃 물 장도쿠가와 가문을 넣은 호화로운 것이었다.
- 이것을 본 각지의 유력 다이묘들도 쇼군을 모방하여 보고 구소쿠를 만들게 한다.
그 후에도 시대 중기부터 후기에 걸쳐 많은 갑주 장인들이 다이묘에게 고용되었다. 그 들은 옛 기록을 뒤져 갑주 유물의 수복과 복제를 행했고, 일족은 제자를 여럿 거느리며 번영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에도 중기 이후의 갑주는 실용성이 현저히 저하 했다고 일컬어진다. 개중에는 정말 장식품으로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전장에 서의 실용성과 필요에 의해 탄생한 기능 가운데 미관을 해치는 부분은 삭제하고, 화려함과 기발함만을 추구한 물건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덕분에 갑주의 수량 자체는 증가하였다. 구소는 실전 장비에서 공예품 혹은 의 례용 의상으로 변했다. 미술품으로서도 높은 가치를 갖게 되었고, 또한 특히 해외에 널리 알려져 호평 받았다. 그래서 국외에 유출된 것도 이 시대의 작품이 많다.
본래 주군의 갑옷은 위험한 전장에서 선두에 서기 위한 절품(品)이었다. 역대 도쿠가와 쇼군도 방비를 위해 충실한 실전용 갑옷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성능 구소쿠 라도 더 이상 춤을 당해낼 수 없는 것은 명백했다.
외국과의 접촉도 영향을 미쳐 근대화되어가던 일본의 군제 속에서 갑주는 과거의 유물로서 버림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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