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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통해 세상을 보다/무기 방어구 역사

중세 라운드 실드 와 야만족 방패 + 켈트인/게르만인/갈리아인의 차이

by 책과함께라면 2022.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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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라운드 실드 와 야만족 방패 + 켈트인/게르만인/갈리아인의 차이

갈리아인은 둥근 방패를 애용하였는가

  • 갈리아먼의 영역까지 세력을 뻗친 로마 제국 양자는 치열하게 싸우면서 서로의 문화를 받아 들였고 최종적으로는 동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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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라운드 실드의 원류가 된 야만족 방패

  • 갈리아인의 둥근 방배는 지름 30~100cm로 가지각색이었으나, 50cm 전후가 주류였다.

이만한 크기라면 운반도 편리하다. 무게는 0.5-2kg, 두께는 6-8mm로서 얇은 나무판을 번갈아 적층한 구조이다. 로마의 스쿠툼 등도 같은 구조인데, 목재를 수직으로 교차시키면 쉽게 부서지지 않는 방패가 만들어진다. 그 밖에 가족제도 있었다. 그들의 방패는 백병전에서는 유효했지만 방호력은 기대하기 힘들었고 화살에 대해 무력했다.

 

주재료는 나무지만 금속테와 방패심이 있고, 방패심 뒤쪽에는 금속 손잡이가 달린다.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기도 했는데, 그것이 중세 귀족 가문 문장의 기원이 되었다.

 

 

 

 

 

 

 

갈리아인은 방패 이외의 방어구는 고작해야 투구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수비를 굳히는 것은 겁쟁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중무장한 로마군에 패퇴하면서도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경무장을 유지한 채 작은 방패를 선호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방패를 자랑으로 여겨, 그것을 잃으면 자해하는 일조차 있었다고 한다. 갈리아인은 이처럼 완고했으나, 게 만인의 고인은 로마와 접촉 후 가능한 한 중무장하게 되었다. 로마 제국 후기, 갈리아인이 로마에 동화된 시대에 옛날의 둥근 방패는 일시적으로 자위를 감추지만 암흑시대 들어 다시 유행한다. 반대로 스쿠툼 같은 로마의 주류 대형 5세기 이후 쇠퇴하였다.

 

방패는 중세 서양에서 14세기까지 사용된 라운드 실드의 원류 중 하나는 갈리아의 둥근 방패에 있다. 서양식 연 모양을 한 카이트 실드가 등장하고부터는 대비하는 의미에서 둥근 방패를 야만족중 실드"라고 부르게 된다. 카이트가 서양 방패의 주류로 교체된 시대, 중동이나 몽골에서는 둥근 방패가 주류였다. 가볍고 다루기 쉬워 보병뿐 아니라 기병에게도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 싸우는 갈리아인
    • 수비를 굳히는 것은 겁쟁이라는 통념이 있어, 작은 목제 둥근 방패와 투구라는 최저한의 장비로 전투에 임했다.
  • 갈리아의 라운드실드
    • 목재가 그대로 드러난 조약한 방패도 많있다.

 

켈트인/게르만인/갈리아인의 차이

그들은 대략적으로 말하면 백인이라는 부분에서 공통된다. 이들 중 최초로 아시아로부터 들어와 유럽 일대를 지배한 것이 켈트인이다.

프랑스에 있던 켈트 부족을 갈리아인이라고 부른 것은 로마인이었다. 갈리아는 로마와 접촉 후 전쟁으로 시작해 민족 융화에 이르기까지 깊은 문화교류를 하였다. 그후 아시아계 훈족에 밀려난 게르만인이 서유럽에 침입하여 세력을 확대한다. 이렇 게임혹시대가 도래하며 로마 멸망과 함께 켈트 운명도 쇠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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