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용병 란츠크네히트와 슬래시 패션
-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에 걸쳐 신성 로마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소집에 응하여 싸운 것이란츠크네히트라 불리는 독일인 용병들이었다 용맹스럽기로 유명한 스위스 용병이 그 원류라고 한다
- 란츠크네히트는 줄무늬나 원색 조합 등 화려한 복장을 선호하였다.
- 타조 깃털 장식을 곁들인 코카르라는 모자를 쓰고 좌우가 다른 긴 양말을 신기도 했다.
- 그들은 그처럼 특이한 차림을 함 으로써 동료들 사이의 연대감을 높였다고 한다.
-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패션에는 군대의 제목과도 같은 의미가 있던 것이다.
의복의 소매 부분에서는 특히 공들여 취향을 살렸다 옷의 겉감에 절개선을 넣어 안감을 내보 였는데 슬래시라는 이 장식 기법은 당시의 엄격한 풍조에서 보면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 황제는 전장에서 목숨을 거는 용병들에게 있어 몇 안 되는 즐거용 이라며 특별히 허락해준다.
당초 슬래시는 세인들에게 꺼려졌지만, 란츠크네히트가 독일에 귀국하자 사람들 사이에 공전의 붐이 일어났다. 이 유행이 16세기 중에는 유럽 전체에 확산되면서 슬래시는 왕후귀족에게까지 사랑받게 된 다. 옷감을 많이 사용하는 값비싼 고도의 장식에 눈길을 끄는 디자인이므로, 부유층에게 인기 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나아가서는 퍼프 앤드 슬래시라 불리는 슬래시를 본뜬 장식을 넣은 갑옷도 만들어졌다.
참고로 코드피스 또는 브라게트라 불리는 반구형 남심 보호대도 란츠크네히트가 활약하던 시대의 방어구이다. 고간을 강조하도록 의도적으로 크게 만들었다. 전투에서도 사 용했지만 귀족들이 몸에 걸치는 장식품도 되었다. 그런데 슬래시의 기원에 관해서는 이런 설이 있다.
용병에게는 정규군 같은 나라의 후원이 없고 아무런 보상도 없다 전쟁에서 입은 부상에 대한 배상도 없다 성실하게 싸우기만 해서는 소모된다. 그래서 그들은 이긴 싸움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약탈을 행했고 불리해 보이면 당장 도망쳤다. 그렇게 부상을 두려워한다면 싸우기보다 도망 치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다. 다만 달아나기만 했다가는 지휘관의 노여움을 사게 되므로 자 신의 의복을 찢음으로써 격렬하게 싸운 척을 했다 이것이 슬래시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전장 에서 찢은 옷이 어느새인가 원래부터 절개선을 넣은 옷이 된 것이다.
란츠크네히트가 화려한 옷을 입은 것은 징병관의 눈을 끌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용병의 채용 은 경쟁률이 높아 활기차고 눈에 띄는 사람이 우선 채용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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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유럽 말 갑옷과 코끼리 갑옷 (서고트의 중장기마, 판금제 바드, 무굴 제국의 코끼리 갑옷, 전투 코끼리 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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