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안식 플레이트 아머는 왜 유명한가
- 신성 로마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후원하는 인스브루크 공방에서는 신형 갑옷이 만들어졌다
- 그것은 실용성과 미관을 겸비한 명물이었다.
- 16세기경부터는 리벳으로 각각의 부분을 연결하여 가동하는 구조를 가진 갑주가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 가동 범위는 의외로 넓다.
- 막시밀리안 1세는 우수한 갑옷 직인을 후원하여 뛰어난 갑옷을 만들게 하였다.
- 투구는 심플한 샐릿을 사용하기도 한다냉단으로 얇게 가공, 플루트로 강화한 판금고딕식 특유의 화려한 장식넓적다리는 홈을 넣지 않고 매끄럽게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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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비 껍데기를 닮은 우아한 갑주
- 갑옷 마니아 군주' 막시밀리안 1세는 우수한 직인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신기술을 시험하는 등의 방식으로 판금 갑옷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 공로자였다.
인스브루크의 갑옷 대 창장미 조이젠호퍼 가문도 그 비호를 받고 있었다. 콘라트, 한스, 외르크 3대에 걸친 일족 은 연구 끝에 플루트 채용한다. 갑옷의 가슴 팔·다리 등에 복잡하게 구부러진 아름다운 장식 홈과 돌기를 내면 얇은 판금이라도 강도가 향상된다. 충격을 받아 넘기거나, 총탄에 대해서도 경사장갑(장갑에 경사각을 주어 방어함을 높이는 것)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다만 드물게 적이 휘두른 검의 칼끝이 걸리는 돌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황제의 지도하에 제작된 갑옷은 고딕 가운데서도 특별하여 '막시밀리안식'이라고 불린다. 또한 부조와 플루트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플루티드 아머'라는 속칭도 있다. 이전 시대의 컴포지트 아머보다 리벳접합 부분이 많으며, 무게는 18-25kg이었다.
기술 혁신이 눈부시던 독일에서는 15세기 후반에 고딕식의 진화형인 '경량화 고딕'도 등장한다.
목과 관절 일부에 체인 메일을 사용하고, 팔과 발목 등 표적이 되기 쉬운 가동 부위에는 여러 장의 철판을 주름상자 같은 형태로 포개 덮었다. 또한 좌우의 장갑 두께는 같지 않아서 왼쪽 면의 방호가 두텁게 되어 있다. 참고로 이 이전의 갑옷도 좌측이 두꺼운 편이며 형태도 비대칭이다. 서양 갑옷은 좌반신이 방어, 우반신이 공격을 담당하고 있었다.
경량화 고딕의 왼쪽 가슴 부분은 특히 두껍게 만들어져 후세의 갑옷보다도 강도가 높았다.
그리고 두꺼운 데 더해 안쪽에는 공간을 마련하여 충격을 견디고 늑골의 손상을 방지 하도록 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가슴 부분 전체가 불룩한 디자인이 되었다.
건틀릿
- 건틀릿은 체인메일의 장갑에서 진화하여 13~17세기까지 사용되었다.
그 이전에는 방패가 있었기 때문에 건틀릿은 일반적인 장비가 아니었다. 가죽 장갑의 손목과 손등 부분에 철판을 장착한 것으로서, 손가락은 스케일형 금속판으로 보호한다. 16세기에 플레이트 아머의 부품이 되었을 무렵 무기를 쥔 채로 고정하는 세공이 가 해졌다. 여차할 때를 대비하여 혹은 장식의 일종으로서 손가락 관절과 손등 부분에 스파이크를 추가한 모델도 있다
전신 갑옷이 쇠퇴한 17세기 중반에는 동체 갑옷을 입은 총병이 왼손에만 대형 건틀릿을 장비하는 스타일이 유행한다. 이것을 '하퀴버스 아머'라고 하는데 왼손의 건틀릿을 방패처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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