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 르네상스인은 왜 renaissance woman이 아니고 renaissance man일까?
그 시절 지식을 독점하는 계금이 존재했던 역사였다. 그때문에 여성이 차별받았던 역사도 사실이다. 남성우월주의 역사가 오래 지속되었기에 능력있는 여성에 관한 기록은 남성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역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책<폴리매스>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3가지이상의 전문적 능력을 지닌 사람인 폴리매스를 관점으로 책을 씀.)
역사속에는 폴리매스(3가지이상의 전문능력)여성이 다수 존재했음에도 역사를 기록하거나 편집한 사람들이(대부분이 남성) 여성을 무시하거나 생략해버렸기 때문이다. 인류사에 등장하는 대다수 사회는 주로 남성이 지배했다.
수천년의 세월동안 여성들이 다방면에 걸쳐 이룬 업적을 무시한 혹은 감춘 책임은 주로 역사가들에게 있지만, '실제로' 공적 영역에서 폴리매스 여성이 극히 소수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여성에게 폴리매스 역량이나 성향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과거 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한 문화 규범이나 장벽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케메틱 Kemetic(이집트의 고대 왕국)왕족, 계몽주의 시대의 여성 문인들, 초기 이슬람사회의 알무하디타(Almuhadditath, 여성학자들), 당나라의 기녀들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근대 이전까지 여성은 지식인이나 전문가 집단과 어울리는 경우가 드물었다. 예컨대 궁정인이 남성일 경우에는 예의범절이 바르고, 다재다능하고, 폭넓은 교육을 받아 교양이 풍부한 사람으로 존중받았다. 반면에 여성 궁정인은 남성 못지 않게 교양 있고 다재다능함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난잡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대상이 되었다.
일본의 게이샤도 예술적으로 다방면에 재능 있는 인재가 많았지만 이들 역시 성적 편견 때문에 차별받은 사례에 해당한다.
할리우드 영화계도 유사한 현상으로 문제가 되고있다. 남자 배우는 다재다능한 능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여자 배우는 성적 매력에 따라 가치를 매길 때가 너무나 많다. 일례로 1940년대에 할리우드에서 이름을 날렸던 여배우 헤디 라마(Hedy Lamarr)는 발명가로서도 뛰어났다. 라마는 어뢰가 전파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해주는 주파수 도약 기술을 개발했고 이 기술은 오늘날 블루투스 장치에 사용된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나탈리 포트먼(Natalie Portman)은 수학 영재였다.
역사적으로 볼때 일반 여성은 대체로 가사에 전념하는 삶을 살았기에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며 사회와 학문, 문화에 기여할 기회는 구만큼 줄었다. 문화 비평가이자 페미니스트 학자인 가야트리 스피박(Gayyathri Chakravorthhi Spivak)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은 폴리매스가 될 가망이 없었다. 우습게도 여성은 내성적이라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고가 만연했다. 인도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사정에서 비교적 자유럽게 자란 나조차 여성은 학문에 부적합 하다고 여겼다. 한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은 데리다(Derrida)의 말을 인용하자면 '명예 남성'이 되었다. 그 여성이 나아가 폴리매스가 되기라도 하면 이데올로기적 문제로 다른 여자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 가야트리 스피박(Gayyathri Chakravorthhi Spivak)
여성의 다재다능한 능력은 집안일에서도 드러났다. 여성은 육아와 음식 준비, 교육, 오락, 재배와 가공 같은 영역을 넘나들며 일을 능숙하게 처리한다. 전통적으로 남아시아 지역에서 가르그라스티(ghargrasti, 집안관리)란 다재다능함이 요구되는 일이다. 집안을 관리하려면 다양한 지식과 소질은 물론이고 정서적이고 지적인 속성 사이에서 효과적으로 의식을 전환하고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는 요리와 청소, 집안의 재정관리, 육아와 자녀교육, 대인관계 관리, 가족 돌보기, 손님 접대 등이 포함된다. 지금까지 발표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보다 여성이 멀티태스킹에 더 능숙하고 적응력이 더 좋다.
"여성들은 [폴리매스에게 필요한] 사고 전환 능력을 실생활에서 이미 발휘하고 있었지만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고 스피박은 얘기한다.
특히 유렵의 경우, 근대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교 생활, 직장 생활, 지적활동에서 여성들은 무시당하고 소외되었다. 계몽운동 자체가 터무니 없이 남성 주도적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에 따르면, 당시에 교육은 많이 받지 못했어도 여행을 자주 다닌 여성은 사실상 남편보다 정보에 더 밝고, 더 현명하고, 더 유식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산업혁명 이후 남성이 받은 교육이란 따지고 보면 세상을 이해하는게 목적이 아니라 특정업무를 처리하도록 설계된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쳤다.
폴리매스 여성 중에는 남편이나 애인의 그늘에 가려 이름을 알리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에는 숱한 지식인들의 아내와 애인 들이 살롱의 안주인이나 번역가, 조사원으로 일하며 상당한 공을 세웠다.
프랑스 출신의 귀족이자 화학자인 앙투안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의 아내 마리 라부아지에(Marie Lavoisier)는 언어학자이자 화학자이자 예술가로서 남편의 책을 번역했을 뿐 아니라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마리는 남편의 조사원으로서 함께 여행을 다녔고, 살롱을 운영하며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같은 저명한 인사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그렇지만 여성인 탓에 인정받지는 못했다.
이외에도 학자, 예술가, 혹은 지도자로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송 받는 여성은 많다. 그렇지만 폴리매스로서 '여러'분야에서 쌓은 업적을 공개적으로 인정받은 여성은 극히 소수이다. 근대 이후에 여성들이 공적 영역에 진출해 전문직으로 일할 때에도 그들은 남성에 비해 두배는 더 열심히 일해야 했고, 한분야에 집중해 실력을 특화해야 그들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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