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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보병의 알려지지 않은 실태 (팔랑크스, 호플리타이와 호폴론 이야기)

by 책과함께라면 2022.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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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보병의 알려지지 않은 실태 (호플리테스, 팔랑크스, 호플른)

중장보병의 알려지지 않은 실태

 

  • 중장보병의 어원이기도 한 호플론은 전쟁의 역사 속에서 형태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그리스 인에게 사랑받으며 수많은 일화와 전설을 낳는다.

※ 같이 보면 좋은 글

메소포타미아에서 쓰인 방어구

철은 왜 최강의 소재가 됐을까? (강철 단조 방어구, 제철 기술의 진화)

그리스 시대 갑옷 종류와 투구(기원전 8세기 청동 갑옷과 투구)

 

그리스는 부자일수록 최전선으로 보내진다

  • 그리스 도시국가의 군대는 시민에 의한 지원제로 부유한 사람일수록 좋은 방어구를 지나고 있었다.
  • 그들은 전장의 주역인 중장보병 호플리 타이가 되었다.

대원 가운데서도 보다 상등 투구 갑옷, 흉갑을 소지한 사람은 대의 최전열 또는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은 오른쪽 끝 잎을 맡았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명예로운 일이라 여겨졌다. 거꾸로 말하면 솔선해서 싸워 이겨야만 하며 패전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부유층이다. 현대와는 다른 가치관이지만, 그러한 특유의 사회적 동기도 작용하여 그들은 진두에 선 것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입하여 번영한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2세기까지는 사비로 장비를 갖출 수 있는 유복한 시민 이 중장 보병대를 구성하였고, 그들은 그리스 병사보다도 중후한 방어구를 착용하였다.

 

그들은 평소에는 시민이므로, 전투 기술 훈련은 그다지 쌓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밀집 대형팔랑크스)으로 돌진하는 단순한 전법이 최적이었다. 주 무기인 창은 초심자가 다루기 쉬웠으며, 중무장이기 때문에 기민한 격투는 무리였다. 그리스인만큼 사기가 높지는 않더라도 팔랑크스 전법에 의해 밀집한 열로 돌격하는 것은 사기를 고무하며 적을 위협하는 효과가 있고, 아군의 적전 도망도 방지한다. 밀집한 사람들 사이에 있기에 간단히 달아날 수 없는 것이다.

 

전장에서는 바깥쪽 병사가 방패로 사방을 수비하며, 안쪽 병사는 방패를 들어 올려 적의 투석이나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막아낸다. 로마에서는 이러한 귀갑) 대형을 '테스 투 도'라고 불렀는데, 진군 속도는 떨어지지만 강고한 방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조인 그리스 중장보병대는 후기 들어 소수 편제의 경장 부대로 진화한다. 충무 장을 그만두고 60cm 정도의 소형 방패와 양손 장창을 장비하여, 기동성과 공격력을 향상한 것이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명장 이 피크 라테스는 그런 부대를 이끌고 코린토스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다.

 

 

호플리타이와 호폴론의 일화

 

  • 중장보병은 패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나, 방패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은 최악이라고 여겼다.
  • 나아가 대열을 어지럽히고 방패를 잃는 것은 동료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되었다.

방패와 그 밖의 방어구를 장비한 병사가 전쟁 등에서 지쳤을 경우, 방패를 손에서 놓는 것은 가장 마지막으로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우수한 흉갑이라도 보호할 수 있는 것 은 병사 본인 뿐이지만, 방패는 자신만이 아닌 진우까지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인은 방패를 각별히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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